아파트 화단에만 있는 풀인줄 알았다.
처음에는 꽃피는 것도 몰랐다. 좀 다른 종류의 긴풀 잔디라고 생각했다.
서울 한복판 건물 숲 사이 소나무 아래 수북수북 잎 사이로 보라꽃이 가득한 군락을 만났을때,
한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종의 식물인 줄 알았다.
새초롬하게 깍은 단발머리 소녀같은 모습이 눈에 남았다.
이름도 모르는 소녀를 추억하는 머슴아처럼 나는 아주 가끔 '그 풀떼기'를 떠올렸다.
그러다 지인의 오래된 아파트 화단에 초록잎 사이 가득한 보라꽃, 바로 그 아이를 만났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그 풀의 이름이 '맥문동'임을 알았고 이후 맥문동과 나와의 인연은 드문드문 이어졌다.
늦가을 보라꽃이 진 자리에 까만 서리태같은 열매가 매달렸을 때, 나는 또 몰라 보았다.
시원스런 잎들 가운데 동글동글 반짝이는 열매는 그저 탐스러웠다.
겨울, 함박눈을 덮어 쓴 푸른 잎이 시들지 않는 게 신기해서 눈에 담았지만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해를 보내고서야 나는 그 이름을 기억에 꾹꾹 눌러 담았다. 잊지 않도록.
맥문동도 먹을 수 있는 식물이다. 심지어 약재다. 잎이나 열매가 아닌 뿌리에 약성이 있다고 한다.
깨끗이 씻어 말려 차로 끓여 마셔도 좋다고 한다.
시골집 감나무 아래 맥문동 두어 포기가 자리 잡았다. 새들이 씨를 물어 던져두었던지 어느날인가
고운 잎들을 가지런히 내어 감나무를 지키고 있다.
올 가을 열매가 달리면 거두어 조르륵 심어 보기로 한다.